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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푸소이야기

[한실농박] 24.09.06~24.09.08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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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
댓글 0건 조회 213회 작성일 24-09-09 0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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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외갓집 같았던 탐진강변의 한실농박에서 잊어버린 추억을 되찾다 


엄한 시댁에 딸을 시집보냈던 죄로 마음처럼 딸을 자주 볼 수 없었던 탓에 외할머니는 어쩌다 외손자인 내가 가면 하나라도 더 먹여보내려고 발을 동동거렸다. 한실농박의 느낌은 바로 그것이었다, 먹고사느라고 바쁘게 살다가 잃어버린 시골외갓집에 대한 아름다운 추억 같은 것...

외할머니는 이미 다른 세상으로 넘어간지 오래지만....집에서는 먹지 못했던 꿀이 듬뿍 들어간 외할머니가 만들어주셨던 달달한 한과의 맛은 아직 도 내 머리 속에 그대로 남아있다. 

또 가을 김장철이면 싱싱한 갈치를 툭툭 토막친 양념장으로 터프하게 버무린 어머니표 경주식 김치. 막내아들의 특권으로 나는 겨울내내 배추 대신 제대로 숙성되어 오묘한 맛을 내는 갈치토막만 쏙쏙 빼먹었다. 생갈치로 만든 양념이라 비릴 것 같다고? 충청도 출신이라 비린 것 싫어하는 아내마저도 어머니표 갈치김치는 좋아했다. 아쉽지만 어머니표 갈치김치 또한 못먹어본지 벌써 십몇년째로 그 맛은 내 기억속에만 남아있다.

그리고 유명 쉐프들이 첨단과학을 이용해 담궜다고 자랑이 대단하던 워커힐호텔 슈펙스 김치. 김치가 맛 있어봐야 얼머나 맛있겠냐고 속으로 생각하며 먹었다가 김치의 새로운 세계를 맛보았다. 한실농박 아주머니의 묵은 김치 또한 온갖 양념이 듬뿍 들어간 전라도식 옛날김치로, 뒤를 돌아볼 여유도 없이 앞만 바라보고 바쁘게 사느라고 잊어버렸던 고향의 맛을 떠올리게 충분했다.

아침마다 한실농박 옆 탐진강변 뚝방길을 걸으며 내 고향마을 형산강변 뚝방길이 생각나서 아주 마음이 편했다. 마치 그 길을 걷는다는 착각에 빠질 정도로...아무 생각없이 걷다보면 명상과 사색의 세계로 빨려들어가게되는 .....그래서 우리 부부는 아침산책길에서 말이 따로 필요없었다. 그저 온몸으로 보고 느끼고 즐기고 또 쉬었다. 힐링이 뭐 별건가. 내 몸과 마음이 편하면 그것이 힐링이지...

강진으로 일주일살기를 위해 떠나오기전 도시에서의 재 삶은 불면의 밤의 연속이었다. 강진에 와서 가급적 잡다한 생각을 버리고 그저 먹고 걷고 또 산과 강과 바다를 바라보며 쉬고 즐기다보니 한실농박에서는 초저녁부터 꿀잠을 잘 수 있었던 것은 뜻밖의 소득이었다.

비록 내고향 경주는 아니지만 또다른 고향을 발견한듯한 느낌.

정들면 고향이라고 ...아마 강진문화관광재단에서 일주일살기를 기획한 것은 고향을 잃고 살아가는 도시인들에게 제2의 고향을 만들어 외지인들이 강진을 자주 찾아주기를 바라는 의도도 있을 것이다. 짧은 기간 그저 주마간산식으로 스쳐지나가는 급한관광이 아닌 일주일이라는 느린여행을 통해서 강진의 속살을 제대로 보고 또 느끼다보면 강진을 제2의 고향으로 삼아 뿌리 내리는 사람들도 생겨날테고.....그러면 지방소멸이라는 국가적 위기에서 강진이 살아남을 수 있는 희망의 씨앗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실농박에서 느낀 놀라운 점 하나.

 삼십년 넘게 아침출근 시간이 바쁜 직장생활을 하는 탓에 아침은 건너뛰는 것이 태반이었던 아내가 한실농박 아주머니의 조기조림을 맛보더니 이게 엄마표 조기조림이라며 반색하며 밥한그릇을 뚝딱. 결국에는 내 것까지 양보하고 말았다. 자식 입에 밥들어가는 것이 이쁘게 보이는 것은 이미 체험봤지만 마누라 입에 아침밥이 쑥쑥 들어가는 것도 이쁘다는 것을 처음 느꼈다. 바로 한실농박에서....

 그렇다. 음식은 혀끝으로 먹는 것이 아니라 기억으로 먹는 것이다. 거기다가 스토리까지 결들여지면 그 음식은 오랜 세월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 소울푸드가 되는 것이다. 언제 다시 한실농박 아주머니표 아침상을 먹어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 기억만은 오래갈 것 같다는 느낌은.....아마 나 혼자만 해본 생각은 아닐 것이다. 그 이유는 음식에 한실농박 아주머니의 따스한 마음과 끈끈한 정이 배어있기 때문이다.

 어렸을 적 오랫만에 시골외갓집에 갔을때 멀리서 온 외손자 배고프겠다고 급하게 한상 차려낸 밥을 먹던 나를 지그시 바라보던 외할머니의 그 은은한 눈빛. 한실농박 아주머니에게서도 그 비슷한 것이 느껴져서....그것이 너무나 고마워....반찬을 바닥까지 싹싹 비웠다. 하나라도 더 먹이려는 엄마의 마음을 담아 힘들게 만든 반찬을 남기는 것은 예의가 아니었으므로...

 한실농박에서의 아침밥은 밥 한그릇을 먹으면서 참 많은 생각을 하는 자리라서 뜻깊은 시간이었다. 도시에서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아침밥은 생각할 여유도 없이 바쁘게 씹고 급하게 넘겨야 하는게 보통이다. 그래서 생각이라는 것들이 비집고 들어갈 여유가 없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이 점점 더 강팍해지고..... 이 각박한 시대에 가족이란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또 자식과 부모의 관계가 무엇인지 또 그것을 지탱하게 했을 어머니이자 아내라는 중요하지만 빛나지 않는 배역을 맡아 묵묵히 수행해왔을 한실농박 아주머니의 인생이 담겨진 아침상이었다. 

 밥그릇에서 인심이 난다는.....옛말이 전혀 틀리지 않는.

 우리가 긴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밥을 함께 나누다보면 정이들게 마련이다.그래서 나는 가족이라는 말보다는 함께 밥을 먹는다는 표현인 식   구(食口)라는 단어에 훨씬 더 정감이 간다. 그리고 부모가 덕을 쌓으면 그 공이 자식에게 간다는 속설이 허무맹랑한 얘기가 아님을 한실농박 아주 머니의 가족사를 짧게 들으면서 다시한번 확인할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강진일주일 살기가 오래지속되기를 바라는 뜻에서 강진일주일 살기를 꿈꾸는 이들에게 한마디 부탁한다. 

강진일주일 살기는 특급호텔에 숙박하는 프로그램이 아니다. 거기에는 모기도 때로는 벌레도 나올 수 있다.

우리가 머무는 방 문앞에는 청개구리 한마리가 마치 수호신처럼  지키고 있어 나는 마음 든든했지만 사람에 따라서 놀라고 또 호들갑을 떨 수 있다. 그런 분들에게는 비싼 돈 드는 특급호텔 숙박을 권한다. 내돈 내고 내가 하는 여행을  굳이  짜증나는 여행을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내가 먼저 마음을 열고 시골동네사람들에게 다가가면 마음의 문을 닫았을때는 보이지 않던 자연풍광과 따스한 동네사람들의 마음이 보너스로 따라온다.여행을 통해 먹고 마시고 즐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여행을 통해서 배우고 성장하는 것이다.

배움은 꼭 학교와 책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길위에서도 배울 수 있다. 그것은 각자 선택의 몫이다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지만 .......낯선 타향이라도 정 들면 고향이되고 또 밥그릇에서 인심이 난다는 평범한 진리를 강진의 산과 들 바다 그리고 하나라도 더 먹이려는 한실농박 아주머니의 푸근한 마음에서 ...다시한번 확인했다. 

강진일주일 살기를 한마디로 줄이면....잊고 살았던 이제는 다시는 갈 수 없는 시골외갓집에 놀러갔다온 느낌. 바로 그것이다. 

이제 강진에서 푹 쉬며 힐링하고 왔으니까 신발끈 단단히 매고 다시 열심히 일할 힘이 생겼다.

그래서 모두에게 감사한다.

한실농박 아주머니. 강진일주일살기를 만든 강진문화관광재단 관계자들 그리고 강진 사람들 마지막으로 강진만 짱뚱어들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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